백학의 100년의 역사를 담은 ‘백학역사박물관’
백학역사박물관은 ‘용맹한 사람들의 후예’ 들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마을의 역사 박물관입니다. 자칭 ‘백학면의 100년 역사를 담는다’ 는 구호아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렵게 마련한 우리의 소중한 공간입니다.
2015년에 국가보훈처에서 이곳 백학면을 제1호 ‘호국영웅정신 계승마을’로 지정하게 된 이유는
지게부대, 6.25 참전유공자, 레클리스의 맹활약, 그리고
이런 소중한 역사들을 알리고자 하는 주민들이 많은 마을이라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합니다.
지게부대
참전유공자
레클리스
주민
백학면이란?
백학면은 경기도 연천군 남서부에 있는 면으로
임진강이 동남면계를따라 흐르며 휴전선과 접해 있습니다.
법정 리 21개리 중 11개 지역은 이북에 속한 미수복지역입니다.
임진강의 두 지류가 면중앙과 동부를 남쪽으로 흐르고
이들 하천연안에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했습니다.
그리하여 쌀, 콩, 율무 외에 인삼, 고추 등의 재배와 축산업이 활발합니다.
수복지역과 미수복지역이란?
수복지역, 미수복지역 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이 곳 백학면은 21개리로 되어있는데 현재는 13개리만 남한에 속해 있습니다.
21개리 중에 11개리는 미수복지역인데, 이 중에 몇개의 리는
남북이 또 다시 나뉘어져서 13개리만이 우리 남쪽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에 이어 이곳 백학에서도
3월 21일 두일장터만세운동이라고 불리는 성난 주민들의 함성이 있었습니다.
백학면 사무소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 기념조각상과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매년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그분들의 사진자료를 전시하여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1919년 3월
1945년 해방 되었지만 신탁통치에 의해 외국군대가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그어진 38선으로 인해 한순간에 남북의 경계가 생겨버린 이곳,
백학면도 절반정도가 잘려 나가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실제 지도를 확인해 보면 백학면의 많은 부분이
비무장지대나 북한땅에 넘어가게 된 것을 확인가능합니다.
1945년 광복
1950년 6월25일 새벽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복구하는데 몇 십년이 걸렸고, 우리의 부모님들은
거의 맨손으로 지금의 백학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백학의 모습을 인근 군부대의
미술 전공자 병사들의 도움으로 벽화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6월
지게부대 (노무자 부대, A프레임 부대)
한국전쟁때 동원된 민간인인력으로 북한군에 비해 무기나 수송수단이
부족했던 한국전쟁의 흐름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무기류운반이나 부상자 이송 등을 담당하고 진지구축, 보수 등에 동원되었으나
그 활약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적절한 보상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있기도 합니다.
그 당시 활약했던 부대원이 거의 생존해 있지 않고 증명할만한 서류도
전무한 상태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백학면에 생존해 계셨던 어르신의 증언과
사진들을 토대로 여러가지 인쇄물을 제작하고 홍보공간을 마련하여
현재 한탄강 물문화관에 전시중에 있습니다.
제 1 땅굴 모형물
상승 O.P 에 있는 제 1 땅굴 모형물 입니다.
1974년 11월 15일 당시 구중섭 하사가 지휘하는 수색조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땅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이 수상해 살피던 중에 땅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때 북한군과 아군사이에 교전이 있었고 이에 굴하지 않고 조사를 계속하여
최종적으로 남침용 땅굴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제1땅굴은 1시간 내에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땅굴입니다.
실제로 볼 수 없는 땅굴을 모형으로 제작하여 교육용 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